우리 순천은 세계 5대 연안습지이자 생태계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순천만을 비롯하여 많은 자연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생태브랜드를 세계에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그 터전 위에 새롭게 단장한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만과 함께 동천~봉화산 둘레길로 이어져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정원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서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게 될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행복을 디자인해 보십시오.
홈페이지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의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에 걸쳐 있는 순천만 갈대밭의 총 면적은 약 15만평에 달한다.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순천시 상사면에서 흘러 온 이사천의 합수 지점부터 하구에 이르는 3㎞ 쯤의 물길양쪽이 죄다 갈대밭으로 뒤 덥혀 있다. 그것도 드문드문 떨어져 있거나 성기게 군락을 이룬 여느 갈대밭과는 달리,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웃자란 갈대들이 빈틈없이 밀생(密生)한 갈대밭이다.
홈페이지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성ㆍ동헌ㆍ객사ㆍ초가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성과 마을 전체가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돼 있는 문화관광명소이며,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다. 조선 태조 6년인 1397년에 왜구들이 침략하자 이 고장출신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구축해 적극 방어에 나셨던 유서 깊은 충절의 마을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선암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선암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과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 속한 보물급 문화재만 해도 승선교·삼층석탑·대각암 부도·대웅전 등 총 9개나 이른다. 사찰풍경사진으로 자주 접하는 커다란 무지개 모양의 보물 400호 승선교와 선암사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 양옆에는 참나무·삼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들어서 있어 사시사철 트레킹의 운치를 더해준다.
홈페이지창건 초기만 해도 송광사는 규모 면에서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고려 인종 때 석조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던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입적한 후 50여 년 동안 거의 폐허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 사찰이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불일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지눌스님은 9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여 명종 27년(1197년) 중창불사로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고 송광사를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만드는 결정적 기여를 했다.
홈페이지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영화, 드라마 세트장은 39,669.6m²(12,000평) 규모에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시대별로 3개 마을 200여 채가 지어져 국내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최근 인기드라마의 무대가 된 드라마 촬영장소가 인기 있는 관광명소가 되는 바람을 타고 세트장은 50·60세대에게는 그리운 향수를, 청소년들에게는 60~80년대 달동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며 가족단위 관람객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어 순천시의 또 다른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하늘·바람·물과 숲이 어우러진 맑고 푸른 조계산 자락 천년 고찰 선암사 가는 길목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숲속의 차 체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는 북적대는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그윽한 향기가 있다. 한옥의 단아한 멋과 여유, 싱그러운 솔향기 속에 은은한 차의 맛과 향, 옛 삶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행복공간이라 할 수 있다.이곳에는 건강한 삶이 둥지를 틀고 있다.
홈페이지순천고인돌공원은 전국 최초의 선사시대 문화 유적인 고인돌 군을 비롯해 구석기 집터·신석기 및 청동기 움집 6동과 선돌 등을 모아서 주암호수변 17000평 부지에 조성한 구석기 테마문화공원이다. 야외 전시장·유물 전시관·묘제 전시관 등으로 이러진 이 공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1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홈페이지정유재란(1597年)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선봉장 宇喜多秀家(우끼다히데이)와 堂高虎(도오다까도라)가 호남을 공략하기위한 전진기지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끈 1만 4천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명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남해안 26 왜성중 유일하게 한곳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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